"달을 닮으렴, 달을 정복하는 거야. 이를 위해서 너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고, 사랑을 움트고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렴. 꽃은 고개를 내려 너를 바라볼 것이고, 달을 정복하는 날이 온다면 꽃은 져버리겠지. 꽃을 밟고 정복의 나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해. 아이야, 이 어미는 항상 너를 응원한단다."
유루 요아케츠키, 흐르는 눈물이 있었던가. 어미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그는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같다는 착각에 휩싸인다. 어머니는 무얼보고 계십니까? 동경하는 어머니를 보면 저는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정처없이 바다를 떠도는 작은 생명처럼, 무리를 놓친 철새처럼 혼자가 되어 어영부영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지요. 하늘은 어떤 낯으로 저를 보고 있겠습니까? 하늘은 새까맣습니다. 암흑이 잠을 청한 바다입니다. 점차 눈은 어둠에 익숙해져 하나둘 피어나는 별들을 담아 저것이 옥이구나 저것이 돌이구나, 하고 손찌검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내 손가락은 달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육안에 보이는 물체는, 별보다 달이겠습니다. 하나하나가 모여 장관을 이루는 밤하늘보다 커다란 빛을 내리어 길잡이가 되어주는, 그런 달에게 시선을 주는 건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이 운명의 현신같았습니다. 저에게 이리 되라고 명하는 운명, 아, 이제 알겠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있어 동경하는 이이자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아이인 제가 당신이라는 운명을 거스를 수가 있겠습니까. 운명에 순응하여 따른다면 당신의 품에 다시한번 안길 수 있겠지요.
"자텔."
"또 왔어?"
"으하~ 자텔이랑 놀려구 왔어~~! 자텔이랑 한시도 안 떨어질 거지롱~!!"
"…참 알기 쉽구나, 에리."
운명에 순응해야하거늘 이는 어찌된 일입니까. 어머니, 저에게 한 여성이 찾아와 어머니와는 정반대의 말을, 아니, 어쩌면 비슷한 말을 건넵니다. 어머니와 비슷한 금색의 눈, 허나 추구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인간이라서 입니까, 그러나 이점이 있다면, 그는 그동안 보았던 인간들과는 달랐습니다.
인간이란 저를 따르는 존재, 신뢰를 주고받는 쌍방향의 존재지요. 나는 당연스레 인간을 보듬습니다. 이것이 어머니가 명령하신 일이고, 나의 천성이기 때문입니다. 아, 사랑스럽습니까, 인간이 사랑스럽습니까,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인간이 이 '에리(Ery)'라는 인간입니다. 사랑스러운 때깔을 밟아 정복하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어라, 곱게 쌓인 신뢰를 넉넉하게 쌓아 이내 즈려밟고 올라가는 것은 사랑이 아니어라, 라고….
반발심이 울컥 치솟곤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쳤던 운명을 거역하라는 반론은 위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굳은 살이 잔뜩 박힌 상처투성이의 손을 움켜쥔다면 반드시 아스라질 겁니다.
순진하게 웃는 낯을 보이는 저 얼굴에 위해를 가한다면 무력하게 무너진 반죽처럼 엉망이 되겠지요. -그러나 저 여린 본성을 망가뜨릴 속셈은 일체 없습니다. 내가 왜 보호해야할 존재를 망가뜨리겠습니까.-
허나 낯에 존재하는 '희망'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몇 번이고 주먹을 내질러도, 발로 무참하게 밟아도 절대로 형체를 잃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때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가 매번 말하는 '희망'은 나에게 위협이 됩니다. 참으로 우습고 모순적이지 않습니까. 나는 인간에게 희망을 전파합니다. 멋대로 전파된 희망은 그릇된 종교를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일종의 광기는 천박하고 본능적이기에 인간적이고, 무척이나 약한 것입니다. 그들의 두려움은 그릇됨을 야기하였고 나는 그것에 대한 대책을 준비했을 리가 만무합니다. 나는 어머니가 가리킨 방향으로만 눈길을 돌린 겁니다. 암흑에 박힌 여럿 별들에 다시는 눈을 돌리지 않은 것이지요. 아아, 이 어찌나 아둔하며 맹목적인 운명입니까.
나는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겁니까.
나는 운명의 길을 걷고 있는 겁니까.
인간처럼, 나는 방황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나에게 에리는 손을 뻗습니다. 인도해야할 자가 인도를 받게 되는 이 상황을 거부합니다. 어머니를 따르기 위해서는 인간이면 아니되는 나에게, 그는 나에게 이리 말합니다.
'너는 인간이야. 자신의 몸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 줘. 그건.. 너무나도 슬프니까.'
정작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어김없이 긍정적인 이야기로 나에 대한 칭찬을 해줄 거면서, 저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면 이리도 구슬픈 표정을 짓습니다. 그는 나의 아픔에 공감합니다. 내가 인간이라 생각하기에 함부로 공감하는 이 자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눈을 뜹니다.
아직 밤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시계는 오전 9시 34분을 가리킵니다.
창 밖에서 햇살이 쏟아져내립니다.
그 아래에는 한 여성이 서있습니다.
하늘의 해를, 달이 아닌, 순수하게 빛을 내는 존재를 바라봅니다.
아침이 이내 나를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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