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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짤막한 글쓰기

감기

by 弟者 2023. 11. 24.

愛라는 언어는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다. 주로 서로의 체온을 나누어 감정을 확인하거나 접촉 없이도 확인이 가능한 것.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은 황폐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건조한 채로 살아가게 된다. 반면 사랑을 하는 사람의 내면은 풍족하다고 한다. … 제츠렌 키쇼우카는 그것을 지독히도 혐오했다. 고작 흔해빠진 감정으로 인해 목숨을 달리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모두가 나누는 감정은 흔하디 흔한 감정이므로 결코 예술적인 가치가 없으리라 판단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그것의 온기는 퍽 익숙지 않은 것이었으므로 멀리하였다.

 

"…."

 

그런 그가 사랑을 하다니, 과거를 후회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는 있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당신에게 같이 지옥에 있자며 매달리는 일이 없었을까? 예상하건대 그는 또 과오를 반복할 것이다. 제츠렌 키쇼우카는 디트리히와 함께 있게 된 나날이 몹시도 고통스러웠다. 고통스러운 현재를 지울 수 있다면, 이라는 가정을 할 수는 없었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저주처럼.

그는 누구든지 좋으니 지옥에 같이 있기를 요구하였다. 또한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지옥에 있는 것-은 그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특기였기 때문이다. 그가 주던 고통도 흔한 것은 아니었다.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었던 이야기를 집필하고 그 이야기로 매료시켜 유명인들의 명성을 흡수하였다. 유명인이 고작 책 하나 때문에 죽었다는 말이 나오니, 너도 나도 읽어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늘 타인의 고통이나 자극적인 것을 자체적으로 찾아 감상하니 그것은 키쇼우카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그가 겪는 고통이 흔하냐 희귀하냐 따지는 것은 다소 어려울 것이다. 과거의 자신에게도 결말이 찾아오기를 바랐으나, 이런 형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 비 내리는데 우산도 안 쓰고 왔어? 왜 이렇게 오늘도 늦게 오나 했더니..." 

"아직도 안 자고 있었네."

 

그야 너가 안 왔으니까, 라는 대답은 목구멍 아래로 삼켰다. 디트리히는 말을 삼킨 채로 키쇼우카를 흘겨보았다가 수건을 가져오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추워, 씨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축축해진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빗물에 흠뻑 젖은 붉고 검은 머리카락은 건들지 않아도 금방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한기에 신경질이 나긴 했지만 진정으로 화가 난 부분은 그런 단순한 부분이 아니었다. 수건을 가지러 간 디트리히를 두고, 구두신은 발로 집안에 들어갔다. 이러니 당연히 바닥에는 물이 한바가지 흐르기 시작했고,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오한에 떨면서도 베란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그러다 감기걸린다."

"걸리라지…."

"꼴을 보니 이미 감기는 확정인 것 같은데."

"…."

 

옆으로 온 디트리히가 그의 머리카락의 물기를 톡톡 제거하려 시도하였다. 창밖은 비가 퍼붓고 있었고, 겨울이 되기 직전이었으니 이 비를 맞는 사람은 필시 감기가 걸릴 것이었다. 환절기였으니까. 그래, 지금 기침을 하고 있는 작자처럼 말이다.

 

"콜록, 콜록. 감기 걸리면 당신한테 넘겨줘야지..."

" 벌써 감기걸렸잖아..."

 

어쩐지 불안스레 구는 남자를 바라보던 키쇼우카는 입에 연초를 물었다. 그 안색은 평소보다 더 나빠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망자같기도 하였다. 눈아래로 내려온 다크서클은 그의 명줄이 바로 내일 끝날도 모른다 암시하는 것만 같았기도 하였고. 몸에 묻은 물을 닦아내던 디트리히의 행동이 잠시 멎었다싶더니 뒤에서 두팔로 그를 끌어안아버렸다.

 

"얼마 안 남은 새끼가 왜 이렇게 싸돌아다녀..."

"리히 씨, 또 울어?" 

 

금방 불이 붙은 연초는 밝게 타들어갔다. 이내 담배냄새를 풍기고 입 밖으로 긴 연기를 내뱉으면서도... 뒤에서 자신을 안은 남성에게 몸을 기대어버렸다.

 

"왜 또 울어."

"그걸 몰라서 묻냐, 개새끼야..."

"콜록, 진짜 울보야, 울보."

"누구 때문인데."

"당신 자신 때문이지. 날 책망하려고?"

"... 훌쩍."

"… 난 당신 진짜 싫어요."

"…."

"세상에서 제일 싫어..."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감정- 사랑을 품게 된 원인이 당신이라서 미워.

 

"따뜻해서 미워..."

 

뒤에서 날 안은 온기가 따뜻하고, 인간적이라서 미워. 잠시 떨어진 그 사이에도 이 온기를 그립게 만들어서 미워.... 라는 헛소리를 삼켜놓고 태연자약하게 굴었다.

 

"당신은 담배 안 펴요? 이거, 당신 건데."

 

보아하니, 그새 또 훔친 것인지 손에는 디트리히가 피던 브랜드의 담배갑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건 또 언제 훔친거야?... 도와줄 테니까 물기 말리고 옷이나 갈아입어."

"놓아야 갈아입든 말든지 하지."

 

자신도 상대의 팔을 풀지 않는 주제에, 이 온기가 좋은 주제에, 말은 잘 했다. 그제서야 제 몸을 놓아주는 디트리히의 얼굴에 한번 담배연기를 내뱉고는 비틀대며 집안으로 다시 들어간 걸 보니 그도 여기에서 죽을 생각은 없었나보다.

 

"또 안는 건 눕고 난 뒤에 해요. 서 있는 것도 힘들거든. 그때 당신 눈물도 닦아줄게. 겸사겸사 목도 졸라주고."

"… … … 응."

 

물기어린 목소리에 우울감이 감돈다. 감기는 온기가 사람간에 옮는 것처럼 금방 옮아버리겠지만, 둘이 떨어질 리는 없을 것이다. 그의 변덕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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