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헬이라는 천사는 비눗방울을 바라보았다. 그 텅 빈 눈에 비치는 비눗방울이란 동경, 경애, 경외, 그 외의 것이 점철되어 있었으며 그것은 곧 그만의 '사랑'이었다. 미라헬은 '사랑'을 보고 웃었다. 그는 또한 우는 법을 몰랐다. 감정을 다루는 것에 서투른 사자는 비눗방울의 세계에 닿고자 하였으며, 그 굳은 살이 잔뜩 박힌 손을 뻗으면 여린 살결이 스쳤다.
"…미라헬."
"무얼 보고 있었어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한겨울 날을 담은 은발의 머리카락은 미라헬의 살결에 닿을 때마다 '차갑다'라는 느낌을 전달하였다. 바람이 분다. 바람은 두 살결을 안아주었고, 두 사람은 심해 속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일이다, 둘은 하늘 위의 존재로서 인간들을 내려보고 있는데 심해 속에 있다니. 꼭 바다의 사자같지 않던가. 심해의 하늘에서 한 쌍의 악보가 그려진 날개와 새하얀 날개가 부유하고 있었다.
"루이드라."
"…."
루이드라는 붉은 입매를 다물고 말문을 열지 않았고, 그에 응하여 미라헬은 쓸쓸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미라헬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러 그만 미소짓는 것에 버릇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말에 똑바로 대답해주지 않는 것은 똑같아요, 너."
비가 내리고 난 다음의 쾌청한 하늘을 연상시키는, 연하늘빛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린다. 그 흩날림과 침묵에 미라헬은 웃고 말았다. 그는 착한 인물이 아니었으니, 자신의 말에 남이 상처받든 말든 염려하지 않았음에, 루이드라는 짧게 혀를 차고 노려보았다.
"인간을 보고 있었어."
"…아~..."
미라헬은 루이드라의 시선에 따라 하늘 아래의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현 세계는 신을 중심에 둔 세계. 인간계는 신을 숭배, 경외하며 세상을 배회시키고 있었다.
"… 인간이란."
"너는 인간을 좋아해요? 계속... 인간을 지켜보길래요."
붉은 우주를 담은 눈동자가 잠시 연하늘의 여인에게 향했다. 시선에 담긴 의미는 '부정'. 그는 인간을 싫어했다.
"인간은 열등하지. … 그런데도 왜 인간을 지켜보냐는 눈이네."
"응."
".. 열등하기에 지켜볼 가치가 있는거야. 그 아이가 알려준 인간의 모습은... 눈이 부셨으니, 그 광경을 보고 싶어서."
"... 그 아이?.."
"열등한 그들이 일구어내는 '자유'는 눈이 부셨어."
자유는 붉은 우주에게 눈 부신 것이었다. 자유. 그것이 무언가? 자유는 때로 족쇄이고, 또는 새장이지만 완전한 하늘이다. 족쇄가 채워졌던 새는 그에게 풀려나 새장에서 탈출해 하늘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자유다. 자유를 닮은 머리카락의 여인에게서 시선을 치운 루이드라는 새하얗고 큰 날개를 넓게 펼쳤다. 그 바람에 공기가 일렁여 루이드라의 긴 앞머리를 훅, 넘겨졌다.
"그 아이가 누구인데요?.."
"… 알 필요 없어."
무심하게 은발의 천사가 고개를 완전히 돌려버렸다. 그 모양에 미라헬은 쿡, 옆구리를 찔렀지만 루이드라는 반응도 하지 않았다. 간지럼을 안 타는 체질인 듯 했다.
"… 보통은 최소한 움찔거리던데~.."
"나는 그 보통이 아니라서."
"… 루이드라는 내가 지금껏 보아온 자들 중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이에요."
루이드라는 미라헬을 다시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라고? 라는 듯한 행동에 미라헬은 또다시 하하... 하고 쓸쓸하게 웃음을 내뱉어버렸다.
"..그리고, 재미있어요."
"… 별 나, 너."
".. 독특한 사람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어봤어."
루이드라에게 있어 미라헬은 매우 독특한 천사였다. 감정에 둔감하면서, 자주 자신을 보고 미소를 머금고, 함께 인간을 지켜보는 천사. 천상의 존재에게 인간은 열등한 존재라, 지켜볼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루이드라도 천상에서 추방당하지 않았다면 인간이 아닌 '그 아이'에게만 흥미를 느끼고 잠시 인간에게 시선을 던진 다음에... 완전히 시선을 거둘 것이었다.
열등하잖아, 인간은. 지켜볼가치가 있어? ...따위의 생각은 '그 아이'로 인하여 사라졌다.
'그 아이'의 인간들이 보여준 자유가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평생을 신의 추종자라는 지위에 앉아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채로 생활하던 그에게 그 눈부심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 아이'는 인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똑같은 천상의 존재였음에도 인간을 주변에 두고 즐겁게 웃고 있었다. 어째서 저리 웃나. 열등한 존재들을 왜 그리 사랑하나. 루이드라는 이해할 수 없었다.
글레나 앨리시야.
그는 천사였다.
지금은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라 인정받지 못 하는 눈치였다. 인간이 되겠다고 날개를 뽑아버린 천사를 누가 인간이라 인정해주겠냐만은.)
흑요석을 닮은 굽이치는 머리카락은 검은 강이었다. 또렷한 금색의 눈은 우유 속에 녹아드는 호박이었고, 여린 살결은 생채기가 나기 쉬웠다. 가녀린 팔에서는 힘이 어디서 나는 건지, 그는 마을사람에게 버거운 일이 생기면 나서서 도와주었다. 무거운 밀가루를 여러 옮기거나, 무거운 나무토막더미를 옮겨주거나... 그도 처음부터 인간들을 도운 건 아니었다. 그도 자신처럼, 대신 지상에서 서서 인간들을 지켜보다 몸을 움직였다. 인간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풀 위에 앉은 아침햇살처럼 웃음소리를 꺄르르 흘린 글레나는 그 무엇보다 즐거워보였다.
붉은 우주가 눈을 감았다가 뜬다. 눈 앞에 바람 사이에서도 굳건한 인간의 마을이 보인다. 시선을 위로 옮긴다. '신' , ... 마테르를 닮은 강렬한 태양이 이글이글 햇살을 내쬐고 있다. 그 눈부심에도 루이드라는 눈을 감지 않았다.
눈부시지 않아.
루이드라에게 눈부신 건 '신'이 아닌 '인간의 자유', 즉 자유였다. 웃긴 일이지, 마테르라는 족쇄에게 풀리기 전 만해도 태양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는데….
루이드라는 한 번 죽었다. 죽음으로써 혼이 마테르의 품으로 돌아갔으나, 마테르는 루이드라를 풀어주었다. 그 이유를 당최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은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분명 마테르가 루이드라를 풀어주지 않았다면 자유를 추구할 수 없는 것은 둘째 치고, 그는 소멸했을 것이다. 당연하다. 신의 사자는 신을 위해서 살아가는데, 죽었다니. 죽으면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소멸했어야 했지만....루이드라는 미라헬을 다시 보았다. 미라헬은 약간은 지친 듯한 눈으로 여전히 루이드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시선이 집요하고 끈질겨 큰 손으로 미라헬의 두 눈을 가려버렸다.
"… 왜요? 내가 널 보는게 싫어?.."
"응, 싫어."
"… 그렇구나~..."
루이드라를 죽인 범인은 미라헬이다. 미라헬은 무참하게 루이드라를 살해했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였다. 미라헬의 목표에서 루이드라는 당시 장애물이었다. 눈 앞에 장애물이 있다면 치우고, 치울 수 없다면 밟는다. 잔뜩 짓밟아 찌그러진 빵처럼 만들고, 나아간다. 미라헬의 목표는 비눗방울 세계에 닿는 것이다. 비눗방울은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투명하고, 터질 때의 섬광(미라헬의 정의였다.)은 그의 주목을 받았다. 감정에 무감한 그가 비눗방울에게 인상을 깊게 받아버렸다는 것은 중요했다. 그는 공감할 수 없는 자였다. 사람의 마음에 공감할 수 없어, 외면하고 외면당했다. 그렇다고 외면당해 슬프다는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미라헬은 세상의 앎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건 미라헬이라는 개인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요인이자 중심체였다.
"그래도 나는 루이드라를 계속 보고 싶어요."
"… 무슨 의미야?"
"말~ 그대로의.. 의미예요. 응. 나는 루이드라 옆에 있고 싶어요."
"애정결핍이라도 있어? 왜 그리 남의 옆에 있으려 해?"
"… 나는 루이드라의 이야기도 궁금하니까~.."
태평한 목소리로 미라헬은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루이드라의 몸에 자신의 머리를 대고, 기대었다. 루이드라의 몸은 자신과 달리 따뜻했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더... 닿고 싶었다.
"정말 별 나, 미라헬..."
"... 정말 옆에 있게 해주는 너도 이상해요~.."
루이드라는 달리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꾹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정말 루이드라는 자신에게 붙은 미라헬을 떼어놓지 않았다. 사실상, 루이드라는 미라헬 밖에 없었다. 천상계에서 추방당한 천사는 천상계에 있을 적에도 종족(루이드라의 종족은 앙겔라 종족. 천사 중에서도 종족이 세세하게 나뉜다.)탓에 편견으로 미움을 샀다. 그 미움은 굉장히 같잖아서, 루이드라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자신이 받는 천대마저 현실로 받아들였다.
"... 마음대로 해."
".. 옆에 있게 해줘서, 고마워."
미라헬은 잘 듯 노곤노곤한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니 잠이 솔솔 오는 모양이었다. 루이드라는 손을 들어 미라헬의 머리 위에 얹었다. 차가운 머리카락은 꼭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맑아진 하늘같았다. 그만큼 차가웠기에, 루이드라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 잘 거면 그렇게 자지 마. 그렇게 서서 자면 저 인간의 마을로 추락한다? 추락사한 천사라고 기사라도 나고 싶나 봐?"
"... 그렇게 안 되게, 루이, 드라가... 해줄 거 잖아."
"…."
맞았다. 루이드라는 또다시 할 말을 잃어버렸고, 이어 한숨을 내뱉었다. 인간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공통점만 없었다면 쉬이 내쳤을 텐데, 내치지 못하는 자신이 어리석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은 미라헬을 안아들었다. 가뿐하게 미라헬을 공주님안기로 안아든 루이드라는 무심하게 인간의 마을을 다시 내려보았다.
"역시.. 열등하고 더러워."
인간은 더럽다. 인간은 천상의 존재와 달리 신적인 능력도 없었다. 무능하게 모든 것을 팔다리로 이루어낸다. 극히 비효율적이고 아둔한 몸짓이었다. 루이드라의 어조에는 다소 경멸이 섞였으나... 눈빛은 덧없이 평화로웠다. 아니, 동경하는 이를 보는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자유를 동경한 나머지 인간을 '부럽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그런 말, 금지.."
자는 줄 알았던 미라헬이 오른손을 들어 검지로 루이드라의 입을 쿡 찔러버린다. 미라헬의 손가락에 루이드라의 체액이 묻어버렸지만, 신경쓰이지 않는 것인지 손을 거두고 수마에 빠져드는 미라헬을, 루이드라는 바라보았다.
".. 바보같네, 우리 둘 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어, 미라헬.
루이드라가 인간에게서 자유를 찾는다면, 미라헬은 인간에게서 불행을 찾고 있었다. 세상은 불행덩어리다. 세상의 앎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불행을 알겠다는 소리였다.
불행을 찾아 무얼하겠다는 것인지, 루이드라는 알 방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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