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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사랑

by 弟者 2022. 11. 4.

나를 사랑하고 있니? 네, 사랑하다마다요. 얼마만큼? 제 목숨을 바쳐도 좋을 만큼이요.

여왕은 저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어린 양의 말을 들었다. 검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고 어린 양에게 입을 맞춘다.

즉위한지 오랜세월이 흘렀다. 여왕은 지긋지긋한 나이가 되었고 그에 따라 피부에 주름이 졌으나 매혹적인 분위기가 배로 흘렀다. 나는 사랑을 그리 생각하지 않는단다. 사랑이란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될 수 없어. 그러곤 어린 양을 밀쳐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했다. 어린 양은 자신의 사랑이 거부당했다는 판단을 하고, 상실감에 젖은 눈망울로 여왕을 바라보았다. 여왕은 언제나 고귀한 존재다. 그가 우리에게 내리는 입맞춤은 눈보라치는 한겨울의 창보다 싸늘하여 얼 것만 같았다. 어린 양은 얼어죽어도 좋다 생각하였다. 거짓없이 쏘아올리는 사랑은 걸쭉한 싸늘함만큼 무한하였다. 그렇기에 어린 양은 여왕에게 애써 달달 떨리는 손으로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옷자락은 힘없이 손을 미끄러뜨리고 자상하게 내려다보는 여왕에게 닿을 수 없다 고하는 것과 같았다. 힘을 내, 힘을 낸다면 닿을 수 있어. 다리에 힘을 주고 윗공기와 안녕을 한다. 여왕에게 입을 맞춘 어린 양은 그대로 얼어버려 대리석 바닥에 쓰러졌다. 더이상 꿈틀 거리지 않는 어린 양을 바라보던 여왕은 허리를 굽히고 양 팔에 양을 가두었다. 가느다랗고 무성한 여왕의 머리카락이 한 올씩 깔리고 한겨울의 밤처럼 새까맣게 자리를 만들었다. 동상에 몇번이나 입을 맞추고 입술자국이 없는 곳이 없을 때, 동상에서 피가 새어나온다. 나올 리가 없는 검붉은 피는 흥건히 여왕을 적신다. 사랑의 온도는 이토록 싸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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