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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궁지에 몰린 황금쥐

계곡을 가르고 등장한 무대에는 생명이 부여되었으리. 1

by 弟者 2021. 7. 12.

"『케일론이라는 사내는 범상한 행세로 그에게 외치더라. '너는 우리 일족을 모욕하였으니, 어찌 용서하랴! 곧 우리 일족이 너의 목을 치러 올 것이다. 너가 도망칠 곳은 존재하지 않아 너는 궁지에 몰린 쥐새끼 한 마리로 전락할 것이다! 사악한 마녀, 세미라미스여!』"

 

여린 목소리는 변성기로 인해 중저음을 이루었고, 중저음은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내뱉었다. 전등이 그의 손에 가려져, 이윽고 빛은 그의 금빛 눈동자에 어른거렸다. 두 눈을 깜빡이고, 대사본을 자세히 들여다본 아이는 어렵습니다…. 라며 중얼거렸다.

 

"퍼시벌 벤틀린!"

"아, 네!"

 

퍼시벌이라고 불린 사내아이는 자신을 부른 여성에게 다가갔다. 여성은 퍼시벌을 노려보고 있었고, 퍼시벌에 대해 탐탁치 않은 심경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했다.

 

"구두를 닦아주련."

 

중년여성은 드레스를 살짝 잡아 흙이 조금 묻어있는 구두를 드러내 사내아이에게 명령하였다. 

사내아이는 눈을 끔뻑였고... 긴 속눈썹이 그에 따라 움직였고, 이어 눈매가 크게 휘었다. 

 

"네, 알겠습니다! 부인."

활짝 웃은 퍼시벌은 주변에 있던 깨끗한 천으로 부인의 구두를 닦았다. 두 손으로 좌우 번갈아 닦으니 어느덧 구두가 말끔해진다.

 

"… 연습, 열심히 하더구나."

"..! 네, 연극은 저의 삶이라는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그러니, 저에게 연극이 없는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즐겁습니다."

 

노력을 인정받아 기쁜지 사내아이는 뺨을 긁적였다. 창백한 피부와 살짝 붉은 입술, 화려한 눈매와 확실한 쌍커풀, 적당히 짙은 눈썹은 누가보아도 미소년의 얼굴이었다. 노란 금발의 머리카락은 고동빛깔의 검은 리본으로 묶어 확실히 앳되어 보였다. 성장판이 아직 닫히지 않은 나이이기에 현재도 무럭무럭 성장 중이었다지.그는 중년여성이 말한 것보다 훨 열심히 연습을 했던 듯했다. 고운 뺨을 타고 흐르는 땀줄기는 그가 얼마나 연극에 집중했는지 증명하는 셈이었다.

 

".. 하나 묻자꾸나. 그리 노력하면 결과가 있을거라 확답할 수 있느냐?"

"…."

 

금색의 눈동자가 구두에서 중년여성에게 향했다. 악의가 다분한 말투는 호의를 보이는 척 하며, 그에게 질문을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퍼시벌이 대답할 수 있는 답변은 명백했다.

 

"네."

"... 오만하구나."

"설령 결과가 없을지라도..."

 

구두가 다 닦였는지 스륵, 천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내려갔고, 이어 천은 그가 윗부분을 잡은 탓에 구겨져 버린다.

 

"저는 연극을 사랑합니다."

"아둔하기도 하지.."

여성은 그를 질책하고는 두 눈을 스륵 감았다. 아둔하고, 오만한 어린 아이. 치기어린 다짐은 얼마 안가 꺼지는 불씨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리 확신한 여성은 따로 그를 질책하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

그에 아이는 웃음만을 유지하였다. 이것은 그가 밑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만든 생존법이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그는 어떠한 모난 말에도 웃음을 유지할 줄 알았다. 단점이라면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바보취급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방심한다. 그 방심의 구석진 곳을 노려 아이는 기회를 엿본다. 이를 위하여 연극계의 밑바닥에서 생활하며 이런 구닥다리, 즉 평민이 할 법한 일을 하고 있지 않았나. 

 

"…."

그러던 중 시선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아이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고, 눈이 마주치자 급히 시선을 거두어버린다. 얼굴을 잔뜩 붉힌 여자아이를 본 퍼시벌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말았지. 

 

"무슨 일이에요, 레인?"

공손한 말투로 퍼시벌은 여자아이를 불러세웠고, 여자아이는 말이 없다 문을 향해 달려가버린다. 바람을 타고 여자아이의 보랏빛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기분좋은 체향이 공기 중에 뿌려졌다. 

 

"저 녀석도 참..."

중년의 여성은 자신의 뺨에 손을 얹고 혀를 차버린다. 퍼시벌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기울이니, 순수한 면을 갖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자신을 보았다가 여자아이가 사라진 자리를 번갈아 보는 여성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지 퍼시벌은 눈을 끔뻑이기만 했다. 

 

퍼시벌 벤틀린은 연애 쪽에는 참으로 눈치가 없는 아이였다!

"…?"


귀족보다 황가의 힘이 강력한 안정적인 제국, 에페르디아. 이 제국은 귀족의 세계가 질서정연하게 유지되었고, 신분을 금전으로 구매하는 것은 금지되어있다. 대신 아래의 지위로 향할수록 금은보화는 물론 기본적인 요소와 멀어지는 구조로, 평민은 질 낮은 환경에서 살아가며 굶주리고, 병을 앓다 사망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이를 막기 위해 황가는 국민을 굽어살피는 정책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제국력 1432년, 벤틀리 남작가의 둘째 자식인 퍼시벌은 

 

"연극계의 거장이 되고 싶습니다."

"… 포부가 크군?"

"연극을 위하여 살아온 저는, 그 정점을 노리고 싶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분야에서 정점을 누리고 싶다는 것은, 당연한 욕구라 생각합니다."

"… 자네의 말은 맞네. 하지만.."

 

뚜벅뚜벅, 값진 구두가 바닥과 마찰하며 선명한 소리를 낸다. 15살 무렵의 아이를 내려다보는 덩치있는 남성은 압도적으로 위협적이었다.

 

"건방지네."

"… 저의 포부는 그 무엇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부릅 뜬 아이의 눈에는 열정이, 행복이, 빛이, 포부와 그 위에 올라선 금발의 남자아이, 바람에 흩날리는 금발, 연극, 인생이 살아 움직인다. 목선을 타고 식은 땀이 흐르나 아이는 눈을 계속 마주칠 수 밖에 없었지. 이런 곳에서 물러선다면 자신은 그 무엇도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멍청하긴."

누군가 중얼거린다. 어린 목소리는 높낮이가 높아 여자아이의 목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보라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여자아이는, 거구의 남성과 눈이 마주치자 움찔거리고는 눈을 피했다. 아무리 기가 강한 여자아이라도 해도, 거구의 남성이 보내는 시선은 위협적일 것이다. 겁을 먹어 불안한 눈빛으로 이곳저곳 시선을 박아놓다 다시 슬쩍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여자아이도 뒤늦게 보게 되었다. 금발의 남자아이가 보내는 열정, 그것은 그 무엇보다 반짝였고,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보다 더욱 빛이나는, 숭고한 별이 눈동자에 존재하였다. 

 

"... 숭고함이, 그 눈에 있네. 그래, ...자네의 숭고함을 유지하기를 바라네."

격려의 말을 보내는 거구의 남성의 이름은, 레나드. 레나드는 두터운 손가락으로 퍼시벌의 눈 주변을 톡 건들었다. 그러고는 덤덤한 말을 내뱉고 다시 심사위원의 자리로 돌아갔지.

단순히 치기어린 말로 치부할 수 있었던 말을, 레나드는 무시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린 생각으로 그칠 다짐인지, 거대한 인물의 시기어린 말인지 지켜볼 가치는 언제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거기."

 

집으로 돌아가려던 퍼시벌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뒤돌아보니 아까 자신을 멍청하다 여겼던 여자아이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지. 퍼시벌은 여자아이를 보고는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 

 

"네, 네펠리 레인 씨."

"... 너, 내 이름을 알아?"

"네! 연극계의 거장이 되기 위해서 모두의 이름을 아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요!"

"…기억력도 좋네.."

의외의 특징에 여자아이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흔치 않게 당황한 눈치였고, 꿀이 섞인 붉은 눈동자는 다른 곳을 보았다가, 다시 퍼시벌을 바라보았다.

 

탁.

부츠의 굽이 바닥과 맞부딪치고, 당당한 다리는 길게 쭉 뻗어 유려한 다리선을 드러내었다. 허리에 한 손을 얹고, 도도하게 퍼시벌을 내려보는 여자아이는 누가보아도 어여뻤다. 어여쁜 아이는 인형같았고, 외모를 관리하지 않아도 저 미모가 가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만한 반짝임을 지녔지. 그것은 밤의 하늘을 떠도는 구름을 닮았기에, 퍼시벌을 기쁜 듯이 웃어버린다. 퍼시벌의 웃음소리는 봄바람의 지저귐이었으니, 뭇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웃음소리였더라.

 

"하지만, 제가 기억력이 좋지 않았더라도 네펠리 씨의 이름을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네펠리 씨의 외모는 군중 속에서도 눈에 띄는 반짝임을 지녔습니다."

"…불쾌하네."

"아, 불쾌했다면 죄송합니다."

 

퍼시벌은 바로 깍듯하게 허리를 90도로 굽혀 사과인사를 건넸고, 또한번 놀란 네펠리는 손을 뻗어 퍼시벌의 멱살을 잡아 끌어당겼다.

 

"농담 한 번 못하겠네…."

낮게 음색을 깐 목소리가 퍼시벌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인상을 잔뜩 찌뿌린 여자아이는 인형처럼 귀여운 입을 열었다. 

 

"내 허락없이, 나를 바라보면 가만두지 않아. 불쾌하니까... 그딴 시선으로 지켜본 자들은 하나같이 속이 시꺼매서, 불쾌해."

위협적으로 으르렁 거린 네펠리는 금세 퍼시벌의 멱살을 놓고, 더러운 것이라도 만진 것처럼 손을 탁탁 털었다.

 

"주제를 모르는 사람도 불쾌하고. 나는 내 이름을 부르라 허락한 적 없어. 성으로 불러. 내 이름을 알고 있다면 성도 알겠지?"

심사를 보이던 중 퍼시벌이 내뱉은 발언이, 네펠리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아, 그야. 그곳에 있던 배우지망생들은 하나같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 아이가 내뱉은 말이라며 귀엽다는 듯이 웃은 인간들도 있었으나, 그곳에 모인 자들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었고, 자신을 누르고 최고의 정점에 올라서겠다는 발언은 불쾌감을 유발했었다. 그것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자신의 멱살을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던 퍼시벌이 다시 웃는 표정을 짓자 혀를 세게 차버린다.

 

"내일 보자고."

보기 싫어도 봐야한다. 그러므로 여자아이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고 또각또각... 자리를 떠나버린다.

 

눈을 깜빡..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폴린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가기로 했는데... 얼른 가지 않으면 빵이 다 팔려 살 것이 남아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그또한 급히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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