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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젤리오 라니에

弟者 2022. 8. 23. 21:32

로젤리오 라니에의 인생의 첫 시작은 어리고 사랑스러운 누이와의 입맞춤이었다. 동생을 매우 아끼는 누이의 입맞춤은 천상의 아기가 맞춘 입맞춤처럼 가볍고 따뜻했다. 로젤리오는 그런 누이를 보며 자랐고, 가문에 적응해나가는 그를 보며 그도 가주의 말씀을 따라 명령을 이행해나갔다. 이 과목을 학습하라, 근시일내로 좋은 성적을 취득하라, 마법학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자꾸나, 네, 아버지. ... 이런 식으로.
라니에가문의 현가주, 엔리코 라니에의 시선은 엄격하지 않았다. 누이의 눈짓처럼 부드럽고, 한없이 따뜻하여 그들의 입밖으로 나오는 노래는 모두 자장가 같았을 정도였다.
라니에가문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흑마법에 좋은 성과를 이루지 못해도, 그들은 하대와 비난을 하긴 커녕 오히려 로젤리오에게 격려의 말을 건넸다. 사랑받고 자란 로젤리오는 웬만한 것에, 아니, 정정한다. 모든 것에 충족감을 느꼈고 갈망하는 것 하나 없었다. 남이 우러러 볼 만한 가문의 위상과 막대한 재산, 뛰어난 형제와 자상한 아버지를 둔 미남인 차남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을 모조리 갖고 있던 것이 한몫 했으리라. 비록 로젤리오는 또다른 이유를 제일의 이유로 제시할 지라도,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그의 배경이었다. 남은 생을 다른 이들처럼 가문을 위해 충성을 하든, 국민들을 위한 봉사를 하든, 자신만을 위하는 길을 걷든 마음대로 해도 될 인생.

코끝에 상쾌한 바람이 스치고 작은 나비가 앉아 휴식을 취한다. 아이였던 로젤리오는 그런 나비를 바라보다 눈웃음을 지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자신이라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행복을 깨부순 사람이, 바로 자신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로젤리오는 누님인 로젤리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발갛게 변한 오른뺨은 아릿거리며 로젤리에게 통각을 전달하였다. 입안에 피가 고여 자칫하면 흘러나올 액체를 삼켜 동생을 향해 웃어보인 누이는 로젤리오의 얼굴과 마주했다.
내 동생, 로젤리오.
내가, 내가 때렸어... 그러니까, 다가오지 말라고, 싫다고 했는데….
로젤리오는 자신이 폭력을 휘두른 주제에 벌벌 떨며 누이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기 일쑤였어라, 급히 오른손으로 제 안면을 가리고자 하여도 떨림은 멈추지 않아 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어두컴컴한 밤이 길고, 달빛은 햇빛보다 눈부시게 빛이 나 창백하게 질린 로젤리오의 감정을 부각시키기 바빴다. 그는 행복을 자신의 손으로 파괴했다는 사실에 슬피 울었다. 구슬픈 울음소리가 저택의 복도에 울려퍼지고, 로젤리는 로젤리오를 붙들어 안았다.
누이에게서는 여느 귀족영애에게서 날 법한 장미향이 나지 않았다. 향긋한 체향이 아닌, 짜디짠 바다향기. 바닷속에 사는 인어처럼 아리땁고 짠 내음이 중독성을 불러일으킨다. 로젤리오는 그 향을 무척이나 좋아했으나 지금만큼은 지독히도 무서웠다. 행복한 기억을 회상하게 되니 바로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었다. 로젤리오의 손을 보자, 고운 손에 달린 손톱이 매니큐어로 새까맣게 물들었다. 로젤리가 직접 칠해준 역작이었다. 머리에 달린 금색의 핀을 보자, 핀의 모양은 돌고래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꽤 귀여웠다. 이것을 로젤리오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로젤리가 자신에게 준 선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왼쪽으로 넘긴 앞머리도, 자주 입는 복장도, 모두 로젤리가 만들어낸 것. 완벽하게 로젤리는 로젤리오를 자신의 역작으로 '취급'하고 있었음에도, 로젤리오는 부러 그 사실을 외면했다. 정확히는 그리 보아도, 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좋았던 것이었다. 그 정도로 그는 누이를 사랑했다.
로젤리오는 자신을 껴안은 누이를 밀어내지도 못하고 잔뜩 떨다 저음의 목소리로 울음을 그치려 발악했다. 누이의 손을 애써 제 몸에서 떼어놓고, 잔뜩 붉어진 제 눈가를 가리며 도망치고 싶어 점점 뒷걸음질을 해나갔다.
나의 역작. 나의 조각상. 나의 예술.
누님, 지금만큼은 누님이... 무서워.
무서워, 내가? 후후...
이윽고 튀어나온 딸꾹질을 멈추려해도 이 상황에서 멈출 리 만무하였다. 한층 더 붉어진 얼굴로 로젤리를 바라보았다. 물기서린 보라색의 눈동자는 바닷속에 잠든 보석같다는 인상을 주었고, 보물같다는 생각에 로젤리는 그의 눈을 탐냈다.

로젤리는, 또한 라니에 가문의 모든 인간은 미쳤다. 정상인이라곤 자신 밖에 없었으니, 제법 큰 괴로움에 휩싸일 것이 당연했다.
그가 무심코 로젤리에게 폭력을 휘두른 이유는 그것이 유일한 대항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누이와 비교한다면 우등한 것이 유일하게 무력 밖에 없었던 무능한 라니에 가문의 사내. 폭력을 휘두를 마음은 일절 없었음에도 그저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급급했다. 로젤리오는 성장해가며 가문의 괴상한 부분을 발견했고, 그것의 크기는 시간이 흐르며 점점 불어나갔다. 자신에게 한없이 친절한 아버지는 밖에선 굉장히 냉혈한 인간이 되고 잔인한 일을 서슴지 않는다. 장녀인 로젤리는 또 어떠할까, 항상 곁에서 로젤리오를 돌보아주던 그는 생명을 파괴하는 것에 있어 거리낌이 없었다. 그 옛날, 자신의 코끝에 앉은 작은 나비는 얼마안가 죽어버렸다. 로젤리가 작은 나비를 잡아채 한손으로 죽여버리는 잔악무도한 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로젤리오에게 있어 꽤 충격적인 일이었으나, 로젤리라는 누님을 보면 아무래도 좋아진다는 마음에 굳었던 표정을 금세 풀었다. 충격받긴 하였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에, 제 충격은 뒤로 하며.
그 폭력성은 예술을 정당성으로 내세우며 자신에게 향했다. 최면을 이용해 방심하게 만든 뒤, 자신의 안구를 뽑으려 다가온 누이의 고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생존본능으로 폭력을 휘두른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의 사실을 체감했다는 것은 거짓말이 될 수 없었다. 폭력은, 마지막의 대항수단이 될 수 있다. 완전히 나쁜 것은 되지 못한다고, 자신을 지킬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누이는 한손을 쥐락펴락하더니 로젤리오의 물음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는, 우리의 어머니는 어디 있는지 누님은 알고 있지?
… … 그게 궁금했니, 리오?
알고 있잖아...
많이 편찮으셔서 별관에서 거주 중이라고 했는데, 믿기 싫은 거니?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 이이상 나를 속이려들지 말아줘, 누님.
… 어머니는...
어머니는 이미 라니에 가문을 떠났단다. 누이의 말에 로젤리오는 역시나 라는 얼굴로 절망했다. 가문의 인간들은 모두 말하기를, 어머니는 불치병에 걸려 먼 별관에서 살고 있다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만날 수 없다 했다. 만약 만난다면 그 병이 옮을 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만나면 아니 된다는 말에 어린 로젤리오는 순수하게 믿어버렸다.
뭐, 우리 가문이 싫으셨던 것이겠지. 우리를 보며 미쳤다고 하였지만, 과연 미친 것이 우리일지, 진실로 미친 인간은 그가 아닐까, 싶었어. 그래, 그렇기 때문에 난 어머니가 싫었단다. 이제 궁금증은 해소되었니?
로젤리오는 가문에서 도망쳤다던 어머니가 부러웠다. 자신또한 진작 이 가문에서 도주했다면, 어머니가 자신을 데려가주셨다면 좋았을텐데, 하고. 그러나 자신을 데려가지 않았음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로젤리오는 만나지도 않은 사람을 위해 배려를 하고 있었다. 사실은 어머니에게서 그 또한 미움을 받고, 버림받은 것임에도 말이다.
누님은 저주를 받았어. 그것을 누군가가 구해줘야만 해...
너도 그 소리니?
자신은 이미 누님을 몹시도 사랑했기 때문에 라니에 가문을 떠날수가 없었다. 사랑이 족쇄가 되어버렸지만 이에 절망하지 않고 누이를 구하려 머리를 굴렸다. 허나 비상한 로젤리오의 두뇌로도 어떤 방도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로젤리오는 열흘간 제 방안에 틀어박혀 잔뜩 움츠리고 나오지 않았다. 그 일이 있기 전에 매일 같이 제 방문을 두드리던 사용인도 이후에는 오지 않았다. 그 누구도 제 방문을 열지 않았다. 아침햇살이 드리우고 밤의 이슬이 떨어지며 달이 물러가는 과정이 반복된다. 꾀죄죄한 몰꼴의 로젤리오는 누님을 구원해낼 날이 올 때까지 가문을 위한 명령을 이행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저주. 누이에게 끼얹힌 그 놈의 저주를 푸는 방법을 그 길에서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까지 품으면서.